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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예술? 먹고 마시듯 쉽게 즐겨

임종업 기자

Jul 20, 2007

소마미술관 ‘누보팝’전

워홀 넘어선 ‘프랑스산 팝아트’

대중문화·순수예술 따뜻한 융합

대표작가 10명 50여점 선보여

 

“덕수궁에서 열리는 빈미술사박물관전에 걸린 그 그림이네.” “17세기 스페인 왕녀가 탄산음료를 마시다니….” “콜라 회사 광고 같아.” “벨라스케스가 살아오면 얼굴이 벌개지겠는 걸.” ‘코카콜라 소녀’ 앞에서 관객들은 유독 말이 많았다.

소마미술관(02-425-1077)에서 열리는 ‘누보팝’ 전시회. 공원에 놀러온 행인에서 관람객으로 바뀐 아줌마들이 수다를 떨고 교사와 함께 온 유치원 아이들이 재잘거렸다. 여느 미술관과 달리 시끄럽다. ‘오르세미술관전’이나 ‘빈미술사박물관전’처럼 사람들이 많이 몰려서가 아니다. 전시된 그림들이 소재가 낯익은 데다 메시지가 비교적 쉬운 탓에 그림읽기가 무척 편하기 때문. 그러니 너도나도 한마디씩 거들고, 기죽기 마련인 그림 앞에서 한마디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즐길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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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코카콜라 로고를 뒤로 하고 오른손에 코카콜라 병, 왼손에 병따개를 든 마르가리타 테레사(‘코카콜라 소녀’). 이렇게 무엄한 그림을 그린 자는 1959년생 스페인 작가 안토니오 드 펠리페. 섹시걸 대신 땡땡이 스카프를 두른 암소를 모델로 내세운 <보그> 표지(‘보그 암소’), 워홀의 ‘마릴린 몬로’와 리히텐슈타인의 ‘M-Maybe’를 합성한 ‘마릴린 리히텐슈타인’, 역시 워홀의 작품을 연상하게 하는 ‘파이프를 입에 문 오드리’ 등이 함께 전시돼 있다. 그는 소위 누보팝 아티스트.파스칼레의 ’리얼타임’.소마미술관 ‘누보팝’전

 

‘새로운 팝아트’라는 뜻의 누보팝은 ‘프랑스의 팝아트’. 수프 캔이나 마릴린 몬로 그림을 덜렁 복제해 전시하는 워홀의 미국식 팝아트와 달리 누보팝에는 이야기가 담겨있고 시니컬한 정도가 심하며 콜라주 기법을 애용한다는 게 평론가들의 설명이다.

 

팝아트는 ‘예술을 위한 예술의 세계’로 자폐한 순수예술에 대항해 들고일어난 미술사조. 유럽에서 태동했으나 미국에서 꽃을 피웠다.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짐 다인, 아르망, 크리스토, 장 팅걸리 등이 대표적. 이들은 광고, 텔레비전, 만화, 영화잡지 등에서 소재를 빌려와 자신들의 작품에 넣음으로써 고상한 순수회화의 이미지를 깨뜨리거나 대중예술이 순수예술과 결코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때로는 순수영역의 명화를 끌어내려 시정의 눈높이에 맞추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이들은 “예술? 별거 아니야, 햄버거, 새우깡, 콜라처럼 먹고 마시는 거야”라고 말하는 듯하다. 슈퍼에서 파는 수프 캔을 미술전시장에 끌어들임으로써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의 경계를 허물어뜨린 워홀이 팝의 대명사. 그렇다고 예술가적 밸도 없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그들은 대중문화의 이미지들을 활용해 그것을 순수예술의 맥락에 집어넣음으로써 발생하는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소마미술관의 누보팝전은 안토니오 드 펠리페 외에 유럽에서 활동하는 작가 10명의 작품 50여점을 전시한다. ‘모나리자’로 만든 벌건 플라스틱 방석과 이를 지키는 플라스틱 푸들(‘복제된 모나리자 수호견’, 윌리엄 스위트러브), 개사료 페디그리, 인간사료 켈로그, 감자칩 프링글스 등의 껍질에 현대의 이야기를 담은 ‘리얼타임’ 연작(안토니오 드 파스칼), 꽃 또는 새싹을 콘돔, 아이스크림 등에 대비하여 그린 ‘100송이 꽃’, 꽁초 장난감 링거줄 등이 그득한 ‘쓰레기통’ 연작(샤오 판),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알약으로 소비적인 의료문화를 비판한 그림들(필리페 위아르) 등. 이밖에 크래킹아트 그룹이 만든 곰과 펭귄 등도 볼거리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누보팝 아티스트들이 인간과 자연 사이의 조화를 추구하면서 인간적인 따뜻함을 보여준다는 사실. 어느 작품을 보아도 슬그머니 웃음을 머금게 한다. (누보)팝의 가장 큰 미덕은 일반인들을 예술 가까이 끌어들인 것. 투자자와 미술학도 외에는 파리를 날리는 화랑가의 난해한 그림들과 비교해 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music/22371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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