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혜욱 대표
Nov 1, 2010
찬바람이 시원스레 느껴지는 가을 중턱에 영화 한 편은 즐거움이다. 20여 년 전 기억을 새롭게 한 ‘월스트리트’. 다시 주인공 고든 게코를 만났다. 돈과 가족, 친구 모두를 잃은 그가 다시 월가를 거쳐 런던 주식시장에서 성공해 가족까지 찾는 이야기다. 극 중의 고든 게코(마이클 더글러스)와 그의 미래 사윗감 제이콥 무어(샤이아 라보프). 그들은 같은 고지를 향해 가지만 다른 사람이다. 게코가 현재만을 투자 목표로 삼는다면 무어는 100년 후를 생각하는 미래형 투자에 가치를 둔다. 거장 올리버 스톤은 미술작품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관객에게 빠르게 전달한다. 바로 무어가 복수해야 할 투자회사 CEO 제임스의 사무실에 등장하는 프란시스코 데 고야의 19세기 작품 ‘사투르누스(saturn)’가 그것이다. 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해 아들까지 잡아먹는 로마신화의 사투르누스를 그린 이 작품은 월가의 끝없는 탐욕과 공멸을 표현한다.
고야의 작품으로 월가를 상징한 감독은 제임스의 방에서 스쳐 지나가듯 리처드 프린스, 키스 해링, 앤디 워홀 등의 작품을 소품으로 활용한다. 이를 통해 자본의 큰손이 움직이는 곳에 작품은 당연지사 함께 움직인다고 암시한다. 투자가들에게 명작은 고품격 보험인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21세기 세계 금융시장의 한 축으로 떠오른 중국의 투자를 받기 위한 월가의 움직임을 묘사한다. 어느덧 중국시장은 세계 자본시장을 얘기하는 데 빠질 수 없는 주인공이 된 것이다. 월가의 욕망은 중국의 자본가 앞에서 고개를 조아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미술 작품과 중국 투자가들이 주요 상징과 소재로 등장한 영화 ‘월스트리트’를 본 후 필자는 세계 미술시장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중국의 아티스트들과 미술 작품 투자자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봤다. 1970년대 등장한 아트 펀드는 아트 마켓에 불을 댕기기 위해 80년대 말 중국의 큰손에 눈을 돌렸다. 이와 동시에 중국 투자가들의 기호에 맞춘 중국 작가들을 뉴욕으로 불러들였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90년대 접어들면서 뉴욕과 유럽에서 나타난 차이나 아트의 붐 덕에 중국 작품은 ‘차이나’라는 국적만으로도 거래가 됐을 정도였다. 영화에서처럼 미국의 월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나타난 큰손은 중국인이고, 그들의 힘은 결정적이다. 그들의 힘은 엄청난 자본과 상상을 초월하는 결속력에서 나온다. 이런 환경 속에서 탄생하는 중국 작가의 작품은 결코 현대 서구적 사고 안에 있지 않다. 도구나 표현 방식은 받아들이지만, 정신은 그들만의 것을 고집한다. 한국도 전 세계가 주목하는 아트마켓이다. 하지만 한국은 개인 컬렉터의 힘만 존재할 뿐 중국과 같은 결속된 문화의 힘을 보여주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이것이 바로 중국·일본 작가보다 서구화되고 자질이 많은 한국 작가가 세계시장의 벽을 넘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미술시장을 향한 해외 작가와 한국 작가를 아우르는 안목과 한국 작가에 대한 지속적인 물질적·시간적 투자가 필요하다. 우리에겐 이미 세계가 인정한 백남준이 있다. 백남준의 국적이 중국이나 일본이었다면 사후 그에 대한 평가는 지금의 평가를 능가했을 수도 있다. 문화사업에 대한 투자는 결국 국력이다. 우리가 한 명의 스타를 만들어낸다면, 그 뒤를 이어 우리 작가들은 더욱 뻗어나갈 것이다. 미술은 단순한 감상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작품은 가치를 지닐 때 존재 이유가 있다. 아트 투자는 자본주의에서 가장 고품격 투자일 것이다. 또 아트 마켓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형성돼야 한다. 미술에 대한 투자는 100년 후를 내다보는 문화에 대한 투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