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타임즈 = 구기성
Jun 7, 2015
수묵화는 동양 문화를 담아내는 대표적인 미술 양식으로 꼽힌다. 먹의 번짐과 농담을 통해 여백과 자연을 표현하는 것. 특히 서양에서 시작돼 첨단 기술로 무장한 자동차를 동양의 간결한 수묵으로 그려낸다는 것은 큰 도전으로 여겨진다. 본질의 틀을 넓힘과 흑·백, 디지털·아날로그 등 다방면의 융합이 이뤄져서다. 이 도전은 국내 장재록 작가의 손에서 시작됐다. 동양화를 전공한 그가 자동차를 소재로 한 작품을 쏟아내기 시작한 배경은 자동차에 대한 애정이 담겨서다. 장 작가는 "스포츠카에서 속도감과 섹시함, 열정을 느낀다"며 "수묵은 자동차로 대변되는 디지털을 아날로그로 변환할 수 있는 매력적인 수단" 이라고 전했다.
마치 흑백사진 같은 작품은 사실 몇 단계로 설정한 먹의 농도로 이뤄졌다. 사실적인 묘사가 이뤄졌지만 작품에 따라 흑(黑)이 주는 무게감을 달리해 개성이 확실하다. 각기 다른 차종과 구도 역시 때론 위압감과 가벼움을 선사한다. 작품에 담아낸 시간의 흐름도 볼거리다. 주제가 된 차들은 모두 주차된 상태다. 움직여야 존재감을 발휘하는 것이 자동차의 속성이지만 정적인 느낌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것. 그럼에도 광각 구도와 역동성의 요소들을 활용했다. 더 나아가 시대성도 드러냈다. 자동차, 거리, 행인을 비롯해 누군가가 버린 사소한 종이도 적나라하게 그려냈다. 종이에 적혀있던 날짜 같은 정보를 통해 시대를 추정할 수 있는 일종의 힌트를 제공한다. 보이는 그대로를 표현함과 동시에 차체 면에 반사된 풍경, 광량 등을 통해 영감을 얻었던 당시의 시간, 상황, 느낌을 전달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장 작가는 작품을 기획하면서 글로벌 디자인 추세도 읽는다고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과거의 자동차는 직선의 아름다움을 가졌지만 최근 출시되는 차들은 곡선의 아름다움을 지닌다. 따라서 면의 반사가 다채로워졌을 뿐만 아니라 헤드램프를 강조하다보니 복합적인 형태가 표현돼 하나의 작품 안에서도 볼거리가 늘어난다. 디자인과 함께 현대 미술이 각광받으면서 최근 일부 완성차 회사가 자동차를 소재로 하는 작품들을 내놓는 현상에 대해 그는 "국내 회사들도 마케팅 효과를 노려서인지 요즘 들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 같다"며 "기업 이미지와 현대 미술 발전을 위해 좋은 방향으로 가는 분위기"라고 말해 긍정의 뜻을 밝혔다.
장 작가가 말하는 수묵은 빛의 반대되는 표현이고 흡수의 성질을 갖는다. 상반된 느낌과 재료가 갖고 있는 모순은 비로소 작품이 완성됐을 때 결국 빛의 느낌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분명 반짝거릴 수 없는 것인데 반짝이는 것처럼 보이는 느낌이 자동차를 수묵으로 나타냈을 때의 또 다른 묘미라는 얘기다.
이번 장 작가의 전시는 내달 11일까지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헬리오아트에서 열린다. 무료 관람이며 자동차 외에 뉴욕 야경, 베르샤유궁 샹들리에 등을 그린 작품도 전시해 소재 범위를 넓혔다. 자동차와 동양 수묵의 콜라보, 흔치 않은 작품 구경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