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재
[작가 노트]
내가 고대로부터 전승된 그림문자인 부적(符籍)에 관심을 갖게 된 점은 이미지가 지닌 외형적 매력은 물론 상징적 조형이 지닌 신비로움때문이었다. 이미지 자체가 어떠한 마법적인 힘을 발휘한다는 부적의 주술적 성격 때문에 마술적 술수나 미신으로 경시되어 그 미적 세계에 대한 온당한 조명을 받지 못해온 것이 사실이다. 막연한 끌림과 흥미로 인하여 부적에 대한 조형적 연구를 진행하면서 부적 속에 커다란 우주가 통째로 들어있음을, 그것도 지극히 정제되고 아름다운 미적 소재들로 가득히 들어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마법적인 신비주의에 바탕을 둔 그림문자의 이미지들은 인간의 창의성을 드러내는 미적 산물로서 인간의 정신과 물질 세계를 연결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고대로부터 전승된 원형의 이미지들, 우주 만물의 창조의 원리를 상징적으로 도식화한 관념의 기호들, 기(氣)의 흐름과도 같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인간의 직관에 의한 추상적 도형들… 이러한 상징의 이미지들로 이루어진 부적은 인간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보이지 않는 세계를 가시화한 독창적인 예술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그것이 지닌 창의적 조형 원리 속에는 현대미술에서 다각적으로 시도되고 있는 창의적이며 파격적인 조형성이 발견된다. 이는 구태의연한 어떤 고정된 틀을 벗어나 새로운 조형으로 재탄생되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의미한다.
나의 작업은 고대로부터의 긴 여정을 지나온 그림문자를 현대적 시각언어로 재해석하여 새로운 미의 세계를 제시하고자 하는 창의적 시도이다. 수많은 시각 이미지들이 범람하고 있지만 현대인들은 지속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갈망한다. 이미지와 문자 그리고 소리와 같은 서로 다른 요소들의 결합에 의한 다매체적 예술환경으로 인하여 현대미술은 새로운 보기, 새로운 읽기 그리고 새로운 듣기의 다양함을 모색하고 있다. 현대미술은 과거와는 달리 이제 시간성을 포함하는 영상미디어, 인터넷, 모바일과 같은 비선형적이고 쌍방향적인 통합적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매체들의 복잡한 융합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오늘날의 디지털 미디어 환경 속에서 부적은 그림과 문자를 오가는 상징적 표상이 지닌 조형적 역동성에 의해 새로운 예술형식으로 나아갈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상징적 조형언어로서의 부적은 현대미술이 나아가고자 하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며 그 표현영역을 확대시켜 나갈 수 있는 방대한 잠재력을 지닌 예술언어이다.
수천년을 내려오며 전승된 그림문자들은 풍성한 상징의 이미지들을 간직하고 있다. 이의 조형적 탐구는 고유한 문화적 정서를 담아내면서 깊이 있고 섬세한 이미지로 탈바꿈하는 새로운 시도이다. 이는 이미지를 통해 우주의 보이지 않는 신비로운 에너지들과 교감하는 매력적인 작업이기도 하다. 다양한 매체들과의 융합을 모색하며 비밀스러운 그림문자 이미지의 새로운 통합을 향한 창조적 도전은 또 다른 시계(視界)를 발견해나가는 즐거운 놀이이다.
오영재(Youngjae Oh) 작가는 서울대학교에서 서양화, 미국 뉴욕대학교에서 컴퓨터아트로 석사를 졸업하였다. 80년대에 컴퓨터아트를 전공하며, 서양화적 그리기 방식을 컴퓨터에 접목하여 새로운 형태의 작업을 일찍이 선보였다. 작가의 모든 작품은 작가의 철학적 사고와 이해를 담고 있으며 작가만의 방법(또는 테크닉)으로 표현된다.
원시미술(primitive art)적 소재인 부적을 문자화하는 오영재 작가의 작품은 전통적인 주제의식을 담고 있으면서도, 물감과 캔버스 대신 컴퓨터의 모니터를 사용하는 현대적인 아트 형태를 특징으로 한다. 부적은 한국의 전통적인 민화작품에서도 익숙하게 보이는 소재이다.
우리나라의 선조들은 전통적으로 부적에 바램, 기원을 담은 다양한 문자를 반복하여 그려왔다. 또한 원시미술을 대표하는 라스코 동굴벽화를 살펴보면 성공적인 사냥을 기원하기 위해 소, 양 등을 벽에 그려넣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후 이집트미술에서는 문자와 그림이 공존하며 시대를 거슬러 해석을 더욱 자유롭고 흥미롭게 해준다. 원시미술의 영향은 20세기에 들어서도 끊이지 않는다. 피카소는 ‘아비뇽의 처녀들’ 작품에서 원시미술의 테크닉을 과시하기도 했다.
오영재 작가는 가장 앞서있는 테크닉에 가장 오래된 원시적 소재를 선택하여 시공을 건너는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과거나 현재나 미래에서나, 우리 모두의 기원은 평안을 향한 ‘복’이다.